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취미/- 게임

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?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?

by 밀리테크를 지향하는 세계 2025. 3. 31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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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와의 만남


 평소 지브리 영화를 즐겨 본다. 특유의 따뜻함과 깊은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이 마음에 와닿아서다. 그러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"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?"를 발견하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.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이야기에 기대도 컸다. 영화는 소년 마히토가 어머니를 잃고 새엄마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면서 시작된다. 그러다 이상한 회색 왜가리를 만나고, 그를 따라 폐허 속 탑으로 들어가며 기묘한 세계를 마주한다. 그곳에서 마히토는 잃어버린 사람들과 상실의 의미를 되새기며, 결국 자신만의 답을 찾아 돌아온다.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렇다.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.


영화가 남긴 생각


 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전후 일본의 분위기였다. 불타는 도시와 폐허가 된 풍경, 상실감에 휩싸인 사람들.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시기를 배경으로, 마히토의 여정은 개인적인 슬픔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감정을 담고 있다. 특히 탑 안에서 만나는 기묘한 세계는 혼란과 재건의 상징처럼 느껴졌다. 미야자키는 전쟁을 미화하지 않는다. 오히려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모습을 조용히 보여준다. 마히토가 탑을 떠나며 선택한 삶은 어쩌면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.

마히토의 아버지


 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전후 일본이라는 배경이 단순히 무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. 역사적 맥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. 전쟁과 식민 지배의 시기를 겪은 주변국의 시선에서는 불편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. 마히토의 아버지가 군수공장에서 일하며 전쟁으로 이익을 얻은 인물이라는 설정도 그런 감정을 자극한다. 이 부분에서 영화가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. 실제로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불편하게 느낄 테고, 그게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. 역사란 그런 거니까.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고,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게 남는다.


 하지만 나는 이 불편함 자체를 피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. 오히려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. 다만 문제는 그 기억이 너무 쉽게 트리거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. 식민 지배라는 단어만 나와도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. 이해는 간다. 상처가 깊었고, 그 아픔은 여전히 살아있으니까. 그런데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, "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"는 단순히 전후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.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물음처럼 느껴진다. 과거에 묶여 끝없이 반목하며 살 것인가, 아니면 그걸 넘어 미래를 향해 걸어갈 것인가. 


 실제로 한일 간의 연결은 과거와 달리 점점 깊어지고 있다. 일본에서는 K-POP이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. 거리에서 BTS나 블랙핑크 노래가 흐르는 게 이제 놀랍지도 않다. 한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장르가 폭넓게 사랑받는다. 지브리는 물론, 액션부터 로맨스까지 다양한 작품이 대중 속에 자리 잡았다. 이런 문화적 교류는 과거의 상처를 덮는 게 아니라, 그 위에 새로운 다리를 놓는 느낌이다. 물론 어디에나 극단적인 목소리는 있다. 서로를 적으로만 보는 정치적 태도가 주류가 되면 안 된다. 그런 태도는 결국 분열을 키울 뿐이다. 마히토가 탑에서 돌아오듯, 우리도 폐허를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.


 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. 미야자키는 언제나 그렇듯 질문을 던지고, 그걸 곱씹게 만든다. 나는 이 질문을 곱씹으며 과거를 붙잡는 것도, 완전히 외면하는 것도 아닌 중간 지점을 생각하게 됐다. 기억하되, 그걸 발판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거. 어쩌면 그게 이 영화가 말하려는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.


맺으며


 "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?"는 쉬운 영화는 아니다. 난해한 상징과 느린 호흡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.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묵직하다. 전쟁의 상처와 상실, 그리고 그걸 딛고 살아가는 이야기. 역사적 배경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, 나는 그 불편함마저 받아들이고 싶다.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될 테고, 너무 붙잡고 있으면 앞으로 못 간다.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간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. 과거를 어떻게 마주하고, 미래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. 마히토처럼 나도 내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. 완벽한 해답은 없어도, 고민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. 문득 탑 속 혼란스러운 세계가 지금 우리 현실과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. 그 속에서 길을 찾는 게 쉽진 않지만,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. 이 영화를 아직 안 봤다면, 한 번쯤 시간을 내서 만나보길 권한다. 생각할 거리가 많아질 테니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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